'영어가 많은 것이 불만입니다.'라는 것은, '문화생산자' 모임에서는 어쩔수 없이 영어가 더 많아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과, 왠지 영어에 종속된 느낌을 벗어나고 싶다는 저 자신의 조건 둘 때문에 생긴 불만입니다. 여러분들에 대한 불만이 아니에요,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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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저
nayas군이 적어대는 글을 유심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 자신도 영어적인 문장에, 영어로 뭔가 쓰는 것을 너무 즐기고, 그리고 책은 역시 영어로된 장정본이 좋아, 하는 편이지요. T.T ... 그리고 덕분에 이런 저런 지적도 많이 들었었답니다, 내가 적절한 우리말 찾기를 하지 못하는 구나, 하고 늘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구요. 아아. 지금 적고 있는 이 문장들 역시...
그리고, 여러모로 아쉬워하고는 하지요. 에쿠. 영어를 쓴다고 사대적이라고 말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영어에 대한 기대치(혹은, 이 정도 영어는 당연히 우리 분들은 읽을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가 참 높은 장소라는 느낌에 꼭 지적해보고팠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정말 영어가 아니면 문화 생산은 안되는 것인가요? 영어에 의거한 문화 생산이 우리 단어들을 죽이고 있지는 않은지 하고 말이지요.
현대에 순우리말의 조어력이 굉장히 낮은데,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새로이 생기는 열린 어휘, 동사나 명사, 그중에서도 특히 명사에 있어서 한자어가 아닌 순우리말을 보기가 무척 힘이듭니다. 새로이 나타나는 명사들을 살펴보면, 대략 98% 가량이 한자어와 외래어에 기반한 단어들입니다. (주의 - 제가 조사한 것이니까, 어디 인용할 만한건 안되는 % 에요.) 그나마 순우리말 조어가 0%가 아닌 것은 다양한 부분에서 순우리말 새로운 단어를 많이들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 한자어가 나쁘다는것이 아니라 토박이말의 조어력이 '사라졌던' 것은 한자어의 사용에 더 능숙해졌기 때문이었음을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
한 쪽을 더 더 사용하게 되면 다른 쪽은 약해지게 됩니다. 노스모크에서는 영어의 사용을 어느정도 당연하다고 보고 있는데, 그 영어 사용이 사실은 어떤
선택이 이미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서 별다른 지적이나 고민이 없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조금즈음은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우리가 단어를 쓰고, 표현하는 방법이, 우리언어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어를 꽤 쉬이 사용합니다.
영어, 미국. 글쎄요. 미우면서도 늘 동경받는 존재가 되는 것인지. 저는 종종 미국땅에 대해 부러움을 느낍니다. 캘리포니아에 두번 가 보았는데, 없는 것이 없더군요. 정말, 화산 말고는 없는 것이 없었어요. 지평선에서 반대쪽 지평선까지 이어진 오렌지 농장이 있는가 하면, 지평선 가득 펼쳐진 색깔이든 사막도 있고, 석유를 퍼올리는 정유탑에... 그냥 참 넓더군요... 그런데, 귀국해서 기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우리 산하가 참, 너무나 아름답다는 생각이 요전번에는 들더라구요. ... .. 너무나... 너무나 아름답더군요. 오후 햇살 아래에서, 펼쳐지는 잘잘한 나무와 집들과 길들.
여행하는 사람들이, 종종 그러더라구요. 어디에든 대체 불가능한 풍경들이라고 말이지요. 우리땅의 모습은 대체 불가능한 무엇이라고! 그래서 죽도록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저는 우리 언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느낍니다. 그리고 살가운 풀이름, 땅이름 만들던 토박이말 조어력이, 20세기내 한자어 사용이후로 또한번 격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잘 통하고, 잘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므로 상관없다고는 하지만, 대체 불가능한 것인데...' 하고, 토박이말에 대해 안스러움을 느낍니다.
흠...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어쩌면 조금 이상하네요. 학부시절, 제가 속해 있던 모임에서는 저는 늘 언어는 쓰이는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영어의 광범한 사용이 우리 어휘의 특성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고, 결코 번역체 문장이 '잘못되거나 못한' 문장이 아니라는 이야기 까지 참 많이 했었는데... 늘 공격받던 입장쪽에 있다가, '어, 이리 자연스럽게 써도 되는건가?' 하고
다리걸기를 해보게 되는건지, 뭔지... 긁적...
그렇지만... 어떤 외국어 단어에 대해서 올곳게 하나의 우리말 단어를 캐어내는 것은... 정말 뭐랄까요. 사전을 찾고 또 찾다가 정말 이거야 하고 명확한 무엇을 건져 올리는 것 처럼, 좋은, 기쁨을 주는 일이랍니다. 그런일,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말을 써서 더 좋다가 정말 아닙니다. 외국글이 아닌 우리 민족의 글이어서도 사실은 아닙니다. 그저, 자라나며 계속 배워온 이 발음들, 이 어휘들의 모임이,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도록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전히 이런 감상적인 이유만으로도, 사전이든 잊혀진 토박이 방언이든, 물속에 잠들어버린 우리말 도시속에서 단어들을 건져올려, 새로운 이름, 새로운 사상, 옮아온 개념들 등에 오래된 새옷을 입히는 것을 하고 싶습니다.
가끔, 낯설거나 외래에서 온것이거나, 혹은 이 세상에 처음 나타난 개념에 좋은 이름을, 세상 어떤 발음과도 다른 우리 토박이말 이름을 붙이려고 해보세요. 너무나 어렵답니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토박이말의 의미소'들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기억하는 의미소는 한자어입니다. 예를 들어 빠르게 변화하는 전기 그러면, 빠를 '급' 변화하는 '변', 그리고 전류, 정도가 쉽게 떠오르지요... 급이라든가, 변이라든가에 해당하는 토박이 말이 있었지만, 이제는 없지요...
흠...앞뒤가 잘 정리가 안되네요. 꽤, 감상적이 되는 문제인가봅니다. ... 사실, 컴플레인(히...)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컨시더(흐...) 해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 더 좋은 '말결'이 숨어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말로 바꾸는 것은, 어쩌면 우리 '생각'으로 소화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답니다. 우리의 언어기관이 대체불가능하게 익혀버린 이 토박이말에 더 기회를 줍시다.
쩝... 글쟁이/인문학도/국어학도 인척하고 싶어하던 어느 공학도의 한탄정도로 들어주세요. 이 한탄, 너무 길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