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실증 사학이 주류라서 프린트만 믿는 나라(?)고 그 사학의 세례를 받은 우리나라 사학도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식민지 시절에 민족주의 사학도 심하게 발전해서 자주적인 걸 은근히 좋아하기 때문에 일본보다는 약하긴 하지만 말이죠.; 최근엔 젊은 분들 중심으로 구전을 중시하는 경향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학계에도 권위라는 게 있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님 말씀대로 할머님 할아버님들 말씀 들으면서 연구하는 사학자들이 생길 겁니다. --
"할머니 할아버지"는 직접 경험한 바로 그 당사자만을 뜻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가 수천년 수만년을 살 길 바라겠습니까? 앞의 주장의 핵심은 구전이지요. 구전의 속뜻은 당대의 문화나 사건들이 다음 세대로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 구전이 우선이고 기록은 나중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기록은 진실을 전하려 할 때 어디까지나 보조장치일뿐이란 얘기입니다. "2005년 현재 거북선을 만드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이순신의 거북선은 존재했을까?" 이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고서는 당황스러웠으나 곧 수습이 되네요. 역사 교육을 교실에서 배운 적이 없는 울 엄마, 이순신의 거북선을 잘 알고 계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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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담지자가 없는 종이 쪽지는 진실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
맑은
유관순과 봉화. 비디오 가게를 정리한다기에 몇 가지 소장할만한 것들을 사 두었었다. 그 중에는
영화반지의제왕도 있었는데, 엄마가 보기 좋아하여 자주 보게 되었다. 물론 엄마는 그림만 본다. '왕의 귀환'에서 급박한 순간 가장 빠른 통신수단으로 봉화를 선택하여 사용하는 걸 보았는데, 늘 그 장면만 보면, 묘한 기분, 뭔가 할말이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었는데, 여전히 말없이 지나가 버리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장면을 볼 때 '봉화'란 것에 대해 좀 더 곰곰히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의 인터넷보다도 빠른 것일까 기타등등. 인터넷은 동맥라인이 짤려버리면 쓸모가 없는 통신수단이 되어 버릴 것이니, 어쩌고 저쩌고. 그래, 하늘이 열려있고 모든 산이 깍여 없어지지 않는 한 봉화가 가장 빠른 통신 수단이겠구나." 그러다가 예전 어머니께서 텔레비전에 삼일절 행사하는 걸 보고, 제목을 단다면 <유관순열사와 봉화>정도가 될만한 이야기를 해 주었던 기억이 살아 났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여쭈어 보게 되었다. 또 같은 대답이 나올까 하면서 말이다.
- 맑은 : 엄마, 유관순 알어?
- 울엄마 : 알다 마다.
- 맑은 : 삼일절에는 그 많은 사람들이 만세를 불렀는데, 왜 일본 순사들은 유독 '유관순'을 꼭 잡아서 찢어 죽이겠다고 발악을 했을까?
- 울엄마 : 당연히 발악하지. 유관순은 만세운동을 하기 전에 태극기를 모두에게 나누어 줬거든.
- 맑은 : 태극기 나누어줬다고 혈안이 될 정도가 돼?
- 울엄마 : 아! 아니다. 유관순이 '봉화'에 불을 질렀잖아. 그래서 그 놈들이 발악을 했던 거야. 유관순이 '첫봉화'를 올리고, 그 걸 보고 이산 저산 모두 봉화에 불을 켜는 바람에 전국방방곡곡에 알려진거야. 그래서 온나라가 일제히 만세운동을 할 수가 있었재. 그토록 살기 힘들던 시절에 봉화가 아니었다면 전국방방곡곡에서의 만세운동은 안되는 일이었지.
이 이야기를 몇번씩이나 들었지만 '노친네 희미한 정신으로 꾸며낸 이야기인들 신명나게 못하겠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오늘은 인터넷을 검색해 보리라는 다짐을 하고 겸사겸사 접속을 했다. 키워드는 당근 '유관순'과 '봉화'를 함께 넣는 것이다. <찾기> 단추를 누르자 마자 관련 자료들이 폭포수같이 쏟아지네.
맑은이 엄마의 그 말이 없었다면
맑은이로서는 인터넷의 그 많은 문서들이 모두 태워지기 전 '유관순과 봉화'에 관한 진실을 확인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문서, 유적, 증언 이 세가지를 확인함으로써 역사적 진실 하나를 후대로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옛날 옛적 이야기를 전해 주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실 걸 우려했던
아무개님의 우려를 조금이나마 걷을 수 있을까요. 울엄마가 돌아가셔도 그의 자손인
맑은이가 '역사의 증인'이 될 수 있음을
맑은이의 사례로 보아 인정하실 수 있는지요? 역사를 증언하기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꼭 영원히 살아계셔야 하느 건 아닙니다. 문서나 유적은 증언과 함께 이어져 내려갈 수도 있고 태워져 없어질수도 있지요.
노스모크의 이 글 역시도 태워져 없어질 수 있습니다. 이쯤해서 "유전자만이 영원하다"고 해야 하는 것 맞죠? 유전자도 태워져 없어질 수 있다라고 한다면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게 되겠지만서도요.
아무개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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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07.01.0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