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에서 보면 공학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환경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걸로 그리고 있다. 이에 대해서 본인은 상당히 의구심이 든다. 인간들은 한 때 과학과 기술이 모든것을 해결해 줄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살았다. 그 결과는 결국 인간 자신에게 돌아왔다. 과학기술은 항상 장미빛인가?... 위의 내용에서도 나타났듯이 인간에 무해한 농약이 생태계에는 안 좋을 수 있다. 사람이 먹고 안 죽는데 벌레라고 먹고 죽어줄리가 없지..만약에 죽는다손 치더라도 먹이사슬의 파괴일 뿐이다. 결국 인간이 추구하는 편리라는 것은 자연과의 괴리를 뜻하는 바가 크다. 물론 지금은 그 피해를 알고 해결해 나갈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궁극적으로 자연과의 친화를 바랄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자동차를 대기오염에 무해한 전기로 바꾸었다고 치자..그렇다고 도로를 안 내는 것이 아니고, 터널을 안 뚫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자동차를 만드는 재료가 공해를 안 만들까? 단순히 연료에 의한 공해가 없다는 사실에만 기인하여 그걸 만드는 공장에서의 공해는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 고속철이 전기를 써서 공해를 안 낸다고 해도 그 속력으로 인한 소음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방음벽이라는 것도 인간이 사는 곳 중심으로 밖에 만들지 않을 것이 뻔한데...그리고 구하는 재료는 모두 자연을 인간 입맛데로 요리하면서 나온 것이 아닌가?..모든 제품에 사용하는 재료를 자연친화적으로 바꾸는게 가능하리라 보는가?.. 만약 바꾼다손 치자 그것이 인간에게 해가 없지만 다른 생명에게 완전히 해가 없다고 말 할수 있는가? 만약 가능하다고 해도 경제성의 논리가 그것을 사용하도록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추구하는 자연친화적 기술이라는 것도 결국 인간중심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아직은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사람과의 조화는 너무도 어렵다고 본다. 인간이 편리라는 것을 추구하는 한...하지만 묶어 두기에는 인간은 자연을 관장하는 신에게서 너무도 자유롭다...아이러니하게도..이 기술이라는 것이 슬슬 인간자체를 괴리시키고 있는 우스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결국 먼 옛날 네안데르탈레인이 몽둥이를 손에 든 순간 인간은 자연과의 결별을 고한거다....--nonfiction
과학으로세상보기 '균형 잡힌' 전문가 교육
자연과학대학이나 공과대학 교수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하는 얘기가 있다. 대학 4년 동안 가르쳐야 할 내용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지난 3백~4백년간 축적된 지식은 물론 20세기에 새롭게 발전한 내용의 일부라도 학생들에게 전수하려면 4년이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내가 있는 토론토대에서도 대학 4년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엔지니어를 배출하기에 턱없이 짧기 때문에 공대를 5년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공대 교수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져 있다. 과학이나 공학 교육은 그래서 더 빡빡해진다. 전공 학점이 늘어나고 실험 실습이 길어진다. 철학과 같은 인문학 과목은커녕 인접 학과의 수업도 교양을 제외하고는 듣기 힘들다. 대학원에서는 다른 수업을 듣는다는 것을 엄두도 못낸다. 나는 공대 학생들에게 과학사를 강의하는데, 내게 배정된 수업시간은 낮 12시에서 오후 1시, 즉 점심시간이다. 그 때가 학생들이 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학생들은 샌드위치를 먹으며 내 수업을 듣고, 곧바로 네다섯 시간 이어지는 실험실습으로 달려간다. 배울 것이 많아졌다는 것은 과학기술이 전문화.세분화되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1950년대를 전후해 과학 논문 가운데, 두 명이 공동으로 쓴 논문이 한 명이 독자적으로 쓴 논문보다 많아졌다. 요즘은 두 명이 쓴 논문도 찾아보기 어렵다. 네 명이 협동연구를 통해 쓴 논문이 보통이다. 과학에서의 협동연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다른 관심을 가진 학자들간의 학문 연구로 그 폭을 넓혀가고 있다. 학문의 발전에서 다양한 분야의 방법론과 관심이 융합되는 일도 잦아진다. 환경학과 같은 학문은 과학.공학.사회과학.인문학의 '잡종' 분야다. 생물학은 생명윤리나 인간지놈계획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 연구하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과 점점 더 많은 접점을 만들고 있으며,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에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 많다. 따라서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의 교육과정에서 자신의 연구와 프로젝트가 가지는 사회적 함의에 대해 더 깊게 숙고해 볼 기회를 가지는 것이 무척 중요해진다. 과학기술의 역사, 그 사회적 영향과 이를 둘러싼 논쟁, 과학기술과 인간, 과학기술과 예술과 같은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신의 일과 전공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평가해보는 시도가 훨씬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모순' 이 존재한다. 기본적 전문 지식을 갖춘 과학자나 엔지니어를 만들기 위해 대학 4년간 교육해야 할 내용은 점점 더 많아지는데, 대체 언제 폭넓은 소양을 위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싶다. 혹시 지금 우리의 과학.공학교육이 교수들이 배우고 싶었는데 못 배워서 안타까웠던 내용을 전부 제공하려는 '욕심' 에 근거한 것은 아닌??정보 혁명의 시대에 '스스로 배우는 법을 배우는 것' 이 진정 중요하다면, 이 모든 과목이 정말 학생에게 다 필요한 것인가? 그러다 보니 사회에서 꼭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자신과 다른 생각의 근거를 이해하고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능력, 자신의 일과 전공의 의미를 세상과의 연관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교육하지 못하고 학생들을 졸업시키는 것은 아닐까? '균형 잡힌' 교육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학에 몸담은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이 위와 같은 질문을 숙고해봄으로써 발상을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의 협소한 '터널 비전' 때문에 발생하는 위험과 이에 추가로 지급되는 비용은 결국 사회의 부담으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 길게 보았을 때, 균형 잡힌 전문가를 키워내는 제대로 된 교육은 우리의 '위험사회' 를 극복할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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