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세상과의 단절을 갑자기 느끼는 듯 하다.
노스모크의 재발견은 지난 2년의 삶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것이다... 그 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무엇을 꿈꾸고.. 어떻게 살았던가... 어떠한 계기로 이곳을 까맣게 잊게된 것인지... 기억을 연구하지만.. 내 기억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천만다행인 것은... 기억정보가 내 뇌 어딘가에는 저장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단지 난 그것을 불러쓰질 못하고 있었다... 나의 기억이라는 것은.......
잠깐 둘러보니.. 이 페이지는 내가 2003년 초 봄에 예일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 만들어지고.. 업데이트 되었던 것 같다. 현재 나는 워싱턴주 시애틀에 있는 University of Washington의 심리학과 내의 행동신경과학 프로그램에서 박사과정 2년째 접어들고 있다. 그간 2년 사이에.. 상당히 복잡한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지만.. 또 지내놓고 보니.. 지난 일은 지난 일이 되었고.. 현재 매우 만족한 상태로 연구에 임하고 있다. 이곳과의 급작스러운 만남은.. 지난 시간으로의 진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시애틀에 와서 연구외에 정기적으로 테니스와 성경공부 모임을 하고 있다. 믿지도 않으면서 성경공부를 한다는 점이 다소 생뚱맞지만.. 같이 공부하는 분들의 깊은 이해덕택에.. 매우 좋은 시간들이 되고 있다..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것 같은데.. 벌써 참여한지 5개월정도 된 것 같다. 요즘은 마가복음을 공부하고 있는데.. 복음서를 통해서 알게되는 예수라는 인물의 윤곽이 조금 더 뚜렷해지는 것 같다. 특히 유대의 율법학자들의 논리는 상당히 재미있는 구석이 많다. 그것을 반박하는 예수의 논리는 단순히 논리게임이라고 하기에는 논리이전의 그가 가지고 있던 어떤 진리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마가복음을 공부하기 전에 갈라디아서를 통해 먼저 공부한 바울이라는 인물에 더 호감을 갖는 것 같다. 아무튼 스스로 어떤 이유에서인지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 매트랩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 필요에 의해 간단하게 C 언어를 사용한 적이 있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CS를 전공한 Joshua라는 친구에게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울 계획을 가지고 있다. Josh는 남북한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적호기심이 매우 왕성한 유태계 미국인 친구이다. 프로그래밍은 재미있지만.. 굉장한 인내력과 치밀함을 요구한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는다.
시애틀은 살기 좋은 곳이다. 특히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캠퍼스에서 보내다보니.. 어쩌면 어디에 있든 크게 다를바는 없겠지만... 어느 건물안으로 들어가든 커피향이 항상 베어있을만큼 커피의 소비량이 많은 지역이다. 내가 가장 깊은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다. 겨울 날씨는 꽤나 을씨년스럽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거나 흐린 날씨가 태반이니... 작년 이맘때는 꽤 쌀쌀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벌써 일주일째 화창한 시애틀의 날씨를 자랑하고 있다. 매일이 한국의 가을하늘이다.. 축복받은 곳이다.
2005년 2월 27일 오후 2시 30분
실험실에서 마늘과자를 먹으며...
매주 토요일 성경공부에 참석한지 어언 십개월이 되었다. 아직 진리를 진리로 바로보지 못하고, 믿음과 깨달음의 차이를 거의 강박적으로 자문하는 습관때문에..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은 어쩜 그들의 믿음성장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 나를.. 그들의 공동체로 인정해주신다. 그래도.. 내 생애에 진심으로.. ‘나는 나의 주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를 고백하게 될 가능성이.. 바울이나 CS루이스가 경험한 그 회심의 순간이… 나에게 올 것인지 자체가 너무도 희박한데.. 참.. 그렇단 말이다.. 알면 알수록 씁쓸해지는 그 기분…
요즘들어..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는.. 온갖 잡다한 책에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상황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위해 참고서적들이 필요할지는 몰라도.. 성경은.. 의외로.. 많은 부분 직접적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말씀이 많다. 그것이 ‘바른 이해’인가는.. 신이 알 일이고.. 내가 알 일이다. 성경을 통해 만나고 있는 예수와 바울은.. ‘특별한’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이 사람들에 의해 지어진 ‘환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환상이거나 사실인 것이 그들을 깨닫는데.. 그리고 그들을 믿는데.. 중요한 이슈인가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헤… 이렇게까지 생각하면서… 왜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힘이 드는건지는… 아이러니한 열아다..
정말 창조의 신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 나의 지어짐의 목적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감’을 의미하는 것인가… 에.. 또… 결국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와.. 그 본질의 진리를 깨닫는 문제는 그것이 어떤 단어로 표현되던..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은데.. 에.. 한계인가…?
그래도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예수의 모습은.. 풍랑속에서 우왕좌왕하며 불안해하는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없음’을 탄식하던 그 모습.. 가난한 여인이 적지만.. 자신에게는 큰 돈을 드리는 그 마음을 보며.. 그 마음을 ‘어여삐’ 보시던 모습이 또렷하다.. 예수에게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의 중심을 읽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생각의 중심… 그것을 읽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예수의 그러한 능력이 길러진 것인지 주어진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나로서는 주어진 것이라고 밖엔 인정할 수 없는데.. 그것이 특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혜안’이어서 나같은 범인은 그러한 말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울수도 있다고 본다. 그것을 내 지적수준으로 끌어내려와 준 사람이 바울이라고 생각된다. 믿음에 대한 그의 가치관이 사람들에게도 투명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이미.. 천국이다. 바울이 제시하는 믿음은 절대로 단순하지가 않다. 그 믿음은 단순한 감정적 동의나 이성적 합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믿기만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그에게는 맞는 말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무엇을 믿느냐..를 또렷이 묻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동고동락을 했던.. 그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데.. 너희는 아직도 두려워하느냐.. 너희의 믿음이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바울은.. 끊임없이 나에게 묻는다.. ‘네가 무엇을 믿느냐?’
2005년 8월 21일 오전 12시 52분
몬스터의 마지막 장면의 의미를 생각하던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