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일원적 민주주의(unitary democracy)와 적대적/경쟁적 민주주의(adversary democracy)의 철학이 존재한다고 해요. 일원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시작과 다름없는 것으로 고대 그리스 사회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친교 또는 우정(friendship)" 개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동질적"인 "평등"과 "합의," "공통의 이익," (하나더 넣자면 "직접적인 면대면 접촉"까지) 들의 가치에 중점을 두는 민주주의 방식 - 다수결 투표에 의한 의사결정 같은 것 - 의 철학을 일컫고요, 이후 르네상스 시기 유럽에서 자본주의의 태동을 계기로 시장과 개인의 이익을 옹호하고자하는 새로운 정치철학이 요구되면서 홉스 같은 이에 의해 적대적/경쟁적 민주주의가 발단이 되었습니다. 그 중심철학은 경제에서의 자유방임주의와 같이 "갈등"과 "자기이익(self-interest)"이
충돌하게 냅두자는 사상이 되는 것이지요. 이전의 일원적 민주주의가 "상호간의 공통된 합의와 존중"에서 평등을 찾았다면, 이것은 인간 "개개인의 이성에 대한 절대신뢰와 각자의 '동등한' 이익의 '보호'"에서 평등을 찾는 원리입니다.
60년대부터 정치학 분야에서 "참여적 민주주의" 쪽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실증적인 연구들 역시 일원적 민주주의에 기반한 철학을 기본전제로 깔고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 즉 면대면 대화와 토론을 통한 공동의 합의를 중시하는 직접적 민주주의에 대한 향수랄까.. - 다른 한편으론 그 "공동의 합의"라는 것이 "억압"의 기제로 작용할 수 있고 전체주의적 폭정의 성격이 있으니까 그리고도 모든 "견해"는 "반대(disagreement)"를 만남으로써 다시한번 검토되고 더욱 합리적인 것으로 연마될 수 있으므로 (또한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선 중요하게 요구되기도 했을 것이고..) 따라서 "다원주의" 개념은 포기될 수 없이 남아있어야했겠지요 매우 기본적인 민주주의적 가치의 하나로서 말예요.
19세기 중반에 토크빌을 필두로, 바람직한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회상황이나 법과 같은 제도적인 것보다는 그 바탕의 특정원리들이 중요하다는 주장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어요, 즉 민주주의의 전제조건같은 것들이 바탕이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위에 언급한 "참여적 민주주의" 연구경향에서부터 정치학자들이 결론짓기를,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태도들이 핵심적으로 중요하고, 그것은 실질적인 문제들을 논할 때의 "절차상의 규범(자유, 평등, 개인주의 등)"에 어떤 합의가 있는 것이라고 보았답니다. (즉 게임의 법칙에 대한 동의가 전제되어야한달까..)
이에 실증연구 쪽의 학자들은 그러한 과정들을 잘 유지하는 참여적인 바람직한 정치문화를 위해서는 시민들이 특정한 가치들을 잘 내면화하고 태도적/행동적으로 지향해야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그 특정가치들을 발견하는데 주력한 결과, 실지로 "정치적 관용"이나 "상호신뢰"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는 점을 밝혀내죠. 그리고 개인들의 기본적인 권리나 자유 등의 민주적인 가치를 잘 내면화한 사람들은 실지로 관용이나 신뢰도 높다는 관계도 밝혀내고요.
결론적으로,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보통 "정상(popular norms)"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상당히 많이 벗어난 견해들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도, 즉 자신이 아무리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도 기꺼이 그 노력과 기회를 인정해주는 관용이 필요하다는 철학이 최근엔 상당히 기본적으로 공통되게 깔려있는 것같아요.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그러한 관용 역시, 각 개인이 민주적 가치를 얼마나 중요하게 내면화하였는가, 또 개인성향의 권위적인 정도, 그리고 각자가 반대세력을 얼마나 위협적으로 인식하는가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고 나뉘지만요.. 이건 또 더 깊이 들어간 문제니까..)
그러니까 "게임의 법칙"을 존중하는 정도에서의 관용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이겠죠.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정치지식은 물론 정치의식/참여가 높은데 관용의 수준 역시 교육수준과 비례한답니다.
분명한 점은, 관용성이 높다는 것이 결코 "반대되는 견해/가치/시각"에 동조하거나 감정이입까지 할 필요까지를 의미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죠. 단지, 그들도 나랑은 다르지만 그들의 견해를 피력할 기회와 권리는 인정해주자 그러고나서 평등한 상태에서 페어게임을 하자는 것인 것같아요. "사상의 자유시장"의 논리처럼 이 쓰레기 저 쓰레기 다 함께 섞여도 그 중에서 가장 이성적인 것, 가장 합리적인 것이 스스로 자연스레 드러나 궁극에는 승리하리라는 믿음같은 것이 저변에 깔려있을 것이고요. (물론 일상생활에서 이런 신념을 항상 유지하기란 우리들 개인으로선 쉽진 않은 일인 것이 분명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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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