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조선일보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문논쟁(사실 논쟁이랄 것도 없다)에 글을 올린 권오운씨의 재반론이다.
내가 지적한 그의 ‘조어’들은 비록 특정 지역의 지역어(그는 ‘지방어’ 라고 했으나 ‘지역어’가 옳다)라고는 하지만 어느 것 하나(‘속닥하다’ 제외) 사투리나 속어, 은어로도 우리말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말들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것은 이런 뜻이고, 저것은 저런 뜻’이라고 단언한다. 앞으로는 작품 말미에 일일이 각주를 달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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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반성도 하지 않고 계속 쓰는 것’은 그의 자유다. 그러나 지역방언을 비롯 모든 비표준어들은 그의 작품속 ‘대화’에서나 맛깔스럽게 구사되고 지문에서는 같은 뜻을 지닌 표준어만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속닥하게 한 잔 하자’는 그의 제의를 나는 이렇게 고쳐서 제의한다. “그럽시다. 어디 ‘호젓한 분위기’의 술집에서 ‘단출하게’ (‘단촐’이 아님) 한잔 합시다. |
권오운씨는 "단촐은 그르고 단출이 옳다"라는 것을 말하며 자신의 '올바른' 국어지식을 짐짓 자랑하고 있는 듯 하다. 물론 그 자신 여러 사전에서 '단촐'은 없고, '단출'만이 있음을 직접 확인해보고 말하는 자신있는 믿음일 것이다.
우리는 종종 초등학교 학생들끼리의 말다툼이 "교과서"나 "출판서적" 등의 증거물로 일순간에 말끔히 정리되어 버리는 것을 보곤한다. "네 말이 틀렸어"/"아냐! 네 말이 틀렸어"/"내가 어제 본 XX책에 뭐라고 돼있어" 여기서 이 아이들의 토론은 끝장이 나버리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런 것을 일러 '권위'라고 한다. 어린 시절에 활자화된 인쇄물은 모조리 '절대적 권위'를지니고 있었다. (우리 삶이 이렇게 간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우리들의 언어 생활에서 종종 '권위'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사전이란 존재이다. "당신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혹은 무슨 권위로 그런 말을 하는거요?"/ "XXX국어 사전에 그렇게 나와 있수다" 여기서 그들의 토론 역시 끝을 맺기 쉽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물어보자. "그럼 도대체 그 사전의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 거요?" 수십년간을 서로 베끼고 베낀, 사전 편찬자들의 머리 속에서 나오는 걸까?
삼판 사판을 거듭하며 '신개정판'이라는 날개를 달고 출간되는 사전들이 사실 옛날 사전의 복사판이고, 옛날 사전들의 일부는 일본 사전을 상당수 베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물론, 몇몇 '최'신조어를 곁들어서 월매를 춘향이로 변장시켜야만 팔리기에, 이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할 것이다. 자주 바뀌는 국어 맞춤법에 발맞추어 '전면 개정판'이라는 광고와 함께.
연세대에서 국어 사전사에 '길이' 남을 만한 작업을 했다. 연세 한국어사전이라 는 서물인데, 전산화된 "말뭉치"corpus에 근거한 최초의 국어사전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전사에 이정표를 세웠다. 국어를 사용하는 '언어사용자'들이 지난 몇십년간 썼던 언어 표현들을 기반으로 사전을 만들었으니 그 사전 작성에 우리들과 우리 조상들이 모두 참여한 셈이다. (여기에는 사전편찬자 개인의 권위가 없다.)
'단촐하다'라는 표현을 찾아보자. 있다.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단출하다'의 잘못된 표현이라는 말도 없고, 그 뜻과 실제 용례까지 그대로 싣고 있으며, 단촐하다는 '단출하다'의 작은 표현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일단 이 사전에 '단촐하다'라는 항목이 실려 있다는 사실은, 이 표현이 우리 언어 생활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정도로' 자주 사용되어왔고, 이는 즉, 우리 언어 생활 나아가서는 우리 삶의 양식 속에 이미 깊숙히 녹아 들아가 있음을 말한다. (게다가, 단출하다와 단촐하다는 그 언어적 기능이 다르다.)
자, 이제 다시 묻고 싶다. 도대체 누구의 권위에 의거하여 단촐하다가 아니고 단출하다라고 말하겠는가? 수천만 국어 사용자들이 틀리고 몇몇 언어순수주의자purists들이 맞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언어가 자연과학이라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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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