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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신세대작가현지인터뷰>1. 무라카미 하루키
90년대들어 일본소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일본소설이 가장 많이 번역된 나라가 한국이며 외국 현역작가들중 국내에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작가도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젊은 작가들까지도 하루 키의 문체를 흉내내고 있다.
하루키의 작품은 장편에서부터 단편집. 여행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작품이 번역돼 있으며 수만부에서 수십만부까지 꾸준히 팔리고 있다. 때문에 출판사들은 하루키의 이름만 갖고도 앞다퉈 책을 낸다. 최근엔 발빠른 한 출판사가 하루키의 전작품을 독점계약,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루키 소설의 성공은 국내 소설소비취향의 변화를 단적으로 암시한다. 80년대 후반부터 다국적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고 성장한 세대가 소설시장의 주소비층으로 급격히 부상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 현실」에 발목이 잡혀 있었던 작가들은 이 들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소비와 공급의 불균형상태를 20년 앞서 비슷한 사회변화를 겪은 일본의 소설들이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흔히 「신세대 문학」으로 불리는 이들 소설은 자국의 특수한 현실보다 후기자본주의사회의 도시적 삶의 모습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문화상품의 이미지를 매개물로 해 그리기 때문에 국가간의 파급력이 크다. 실제로 현재 국내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는 일본소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또 앞으로도 한국사회가 후기자본주의사회로 진입하면서 일본이 20년 전에 겪었던 것과 유사한 사회변화를 겪는다면 문학 또한 닮은 꼴로 갈 공산이 크다. 따라서 일본 「신세대문학」의 추이를 점검해보는 일은 우리 문학의 방향을 가늠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듯 싶다. 이런 취지에서 일본「신세대문학」을 이끈 대표적인 작가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시마다 마사히코와 처음부터 신세대문 학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작가 마루야마 겐지와의 인터뷰를 준비했다. 9월1일부터 10일까지 일본 현지에서 진행된 인터뷰기간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들 작가가 공통적으로 『이제 역사에 눈을 돌릴 때』라고 말하고 있는 점이다. 우리가 80년대를 거치면서 역사에 치여 개인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을 때 일본은 고립된 도시의 원룸에서 나와 다시 광장을 탐색하고 있는 인상이었다. 편집자註 도쿄(東京)에 도착한 9월1일은 하루키의 신작 『태엽 감는 새』(원제: 태엽 감는 새의 연대기)가 나온 며칠 뒤였다. 시내지도를 사기 위해 들른 한 조그만 서점에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의 연대기』 완결판 출간」이라는 선전문 구가 창문에 붙어 있었다. 책이 잘 나가느냐고 서점주인에게 물어봤더니 『하루키 책은 나온 다음날 바로 베스트셀러 1위다』고 답했다. 어떤 책이든 서너달 안에 1백만부가 팔린다는 하루키의 인기가 피부에 와 닿았다. 하루키와의 인터뷰는 4일 자택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고급주택가인 아오야마의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아오야마 묘지가 있었다. 고급주택가의 근처에 묘지가 있는이 낯선 풍경은 하나의 상징처럼 다가왔다. 문명 의 한 가운데서 죽음보다 더 깊은 상실감을 갖고 살아가는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을 연상시켰다. 초인종을 누르자 하루키가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와 집필실로 안내했다. 15평 정도 되는 널찍한 집필실에는 운동용 자전거가 놓여 있어 인상적이었다. 하루키는 실제 나이 마흔여섯보다 10년은 젊어 보였으며 매우 건강해 보였다. 편한 옷차림과 달리 약간 긴장한 듯 보였으며 인터뷰가 진행되는 두시간 내내 자신의 입장을 되도록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89년부터 거의 10년간을 유럽과 미국에 체재하면서 소설을 써 왔는데 이번에 완전히 귀국한 것인가.
▲당분간 일본에 있을 작정이지만 언제 다시 해외로 나갈지 알수 없다. 해외에 있는 것이 소설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 일본에있으면 문단이나 편집자등 사람들과 접촉해야 할 일이 많다. 이런 상황이 힘겹다.
-효고(兵庫)縣남부 대지진 피해자를 위한 자선 낭독회를 갖는다고 들었다. 사회활동에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랜 해외생활 동안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나.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자신을 좀 더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미국생활에서 얻은 것이다. 미국은 개인에서 출발하지만 그 다음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한다. 몇 년간 생활하면서 이런 사고가 정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한가지 생각의 변화를 가져 온 게 있다면 나이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후반에 학생운동을 체험했다. 이때 받은 정치에 대한 불신과 인간에 대한 좌절감은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25년이 지난 지금은 그 당시 생각한 이상들을 다시 한번 다른 형태로 환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신 소설에는 유난히 자살하는 사람이 많고 여성이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은데….
▲70년대 내 주변에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살했다. 그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그런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황을 비현실적이라고 말하지만 내게는 그게 현실이었다. 여자에게 특별히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자를 그릴 때는 매력적으로 그리려 한다. 내가 봐도 호감을 느낄수 있을 만큼.
-당신 소설의 매력을 흔히 정서적 친밀감이라고들 한다. 한 독자로부터 당신 소설을 읽고 나면 술이 마시고 싶거나 여자친구가 보고 싶어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굉장히 반가운 소리다. 나는 피지컬하게 독자에게 호소한다. 성적인 장면이든, 음식을 먹는 장면이든 독자가 직접 그 행위를 하고 싶도록 쓴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젊은 여대생에게서 편지가왔다. 『노르웨이의 숲』을 다 읽은 것이 새벽3시였는데 남자친구가 보고 싶어 도둑처럼 기숙사 2층방으로 숨어 들어가 함께 밤을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를 받고 무척 기뻤다.
-당신 소설의 독자들은 당신이 연애에 능숙한 사람일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웃음)수줍음을 많이 타기 때문에 여자 앞에서 말을 잘 하지 못한다. 연애는 먼 옛날 얘기다. 결혼한지 벌써 25년이 지났다.
-아이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나와 아내는 좀 더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70년대에 느낀 환멸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이 세상이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당신 소설의 주인공들은 인간과의 교류를 거부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는 지적도 있는데….
▲내가 그리는 인물은 고도 자본주의사회 도시의 개인들이다. 그들은 고립된 개인이면서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을 원한다. 그들에게 고립은 모럴을 지키는 방식이다. 나는 사람이 모럴을 지키며 교감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다.
이것은 일종의 팬터지다. 이런 팬터지가 현실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8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팝이나 할리우드 영화와 같은 미국의 대중문화를 소설 속에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당신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여기에 대해서는 무국적적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보스턴에 있을 때 한국 평론가를 만나 내가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웃음)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이해가 된다.
나는 소설을 통해 도시에 살며 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될 만한 삶의 표본을 제시하고 싶다. 여기에는 보편적인 추상성이 요구된다. 리얼한 생활이 소설 안에 스며들면 추상성이 상실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배제한다. 문화적 기호들 을 많이 사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처럼 문화가 굉장한 기세로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에는 국적성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 같다. 영어로 소설을 쓰는 일본인 작가가 있는가 하면 미국에서 영어로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하는 작가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역성 속에서 구멍을 파거나 바깥으로 눈을 돌리는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한 것 같다. 나는 바깥으로 눈을 돌려 열린 문화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변했다. 소설에 빈번하게 등장하던 로큰롤과 같은 문화상품의 이미지가 많이 줄어들었다.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일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정신적 기둥 없이 살아
-앞으로의 작품경향에 변화를 암시하는 말처럼 들리는데….
▲나는 70년대 이후 정신적인 기둥이 없는 시간을 살아왔다.
그래서 현재와 같은 시대를 오래전부터 살아온 느낌이다. 앞으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역사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태엽 감는 새』에 2차대전중 중국에서의 전투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시도라 할 수 있다. 또 한가지 관심은 모럴이다. 모럴은 과거부터 내가 가장 몰두한 화두(話頭)같은 것이다. 이 시대는 모럴을 갖고 살기가 굉장히 힘든 시대다. 그러나 인간은 모럴 없이는 살 수 없다. 어떤 식으로 모럴을 갖고 살 수 있을까를 쓰고 싶다. 『노르웨이의 숲』도 결국은 모럴에 관한 이야기다. 이 소설의 성적 묘사가 비도적적이라는 말을 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모럴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런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도덕적 생활 힘들어
-전통적인 일본문학 작품보다 미국작품을 더 많이 읽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소설(私小說. 개인의 체험을 고백형식으로 표현하는 일본 전통소설 양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소설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만큼 싫어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분야의 소설이다.
-운동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장편 쓸 때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 체력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
술은 가끔씩 마시지만 많이는 하지 않고 담배는 오래 전에 끊었다. 그리고 장거리 달리기와 수영을 규칙적으로 한다. 마라톤 풀 코스도 가끔씩 뛴다. 하루키는 인터뷰하는 동안 줄곧 「모럴」과 「역사」라는 말을 강조했고 80년대 한국 학생운동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또 자신의 책이 번역된 출판사에 대해 물어 보았고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 자신이 왜 그토록 인기가 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 -49년 효고현 아시야 출생.
-75년 와세다대학 영화과 졸업. 대학 재학중 재즈 카페 「피터」경영. 이 무렵 18세 때 처음 만난 동갑내기 아내 요코(陽子)와 결혼. -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상지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 -86~89년 4년간 유럽에 체재하며 『노르웨이의 숲』『댄스댄스 댄스』등 집필. -90~95년 미국 프린스턴대학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하버드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일본문학 강의. -작품으로 『1973년의 핀볼』(80)『양을 둘러싼 모험』(82)『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85)『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92)『태엽 감는 새의 연대기』(94)등이 있다. ▶ 중앙일보 1995년 09월 19일자 46면 ▶ 글 쓴 이 : 남재일 기자 |
기사검색해보니 기사를 읽으려면 돈을 내라는군요. 2.5불이라는데 그냥 사버릴까요..?) 그러나 옴진리교사건과 미국테러사태를 동렬에 놓고 비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뉴욕테러사태에는 옴진리교사건에는 빠져있는 국제정치의 역학관계가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닫힌 회로와 열린 회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 들은 훌륭한 문학적 섬세함입니다만, 뉴욕테러사태의 분석에 대해서라면 그에 못지 않게 정치적 섬세함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의 정치적 섬세함이 결여된 문학적 섬세함은 결국 미국 주류사회의 일방주의적 관점을 다소 세련되게 표현하는데 그치고 말았다고 봅니다. --Khak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