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2월 입대, 그리고 1997년 4월 제대, 강원도 화천의 3 동네와 철책 근무를 병행하는 부대에 있었다. 입대 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문장이 없었으면, 아마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약간 부적응하는 구석이 있었지만, 부대 레크리에이션 시간마다 나서서, 노래와 춤을 선사한 관계로 만인의 귀여움을 받는이가 되었었다. (원래대로 하자면, 부적응자였는데, 춤과 노래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그정도의 기쁨이었을 뿐이었지만. 살아남고는 사반세기의 평생 동안 가장 건강했던 상태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철책과 산을 오르내리던 무릎은 겨울마다 좀 쑤신다.
M60을 들었고, 상병때까지 군기가 쎈 환경에 있다가, 이후 철책 생활 동안, 하루키의 태엽감는새 전 4권을 비롯, 파스칼의 팡세, 시골사람의 편지, 등등의 책과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도 어느정도 진도를 내면서 쓰면서 생활할 수 있었다. 소대 군종병 생활도 했었는데, 강의가 지나치게 난해했던(?) 탓으로 소대에서 신자가 줄었던 기억이 있다. 단 한번 포상 휴가를 나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건 분대장 일지를 하루하루 빼꼼히 채우면서, 대대장이 이 일지에 대해서 상당한 호감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열심히 쓴만큼 대대의 모습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고, 그렇게 열심히 썼다는 댓가로, 포상휴가를 받았다. 그건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이었다. 펜의 힘은 강하다는걸 아는 또하나의 실제적 예시였으니까. 대대 혹한기 훈련 영상에 내가 쓴 시와 나의 낭송이 더빙되었던 것을 즐겁게 생각한다. (대대장은 철책에 있을 때, 내가 무라키미 하루키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알고서는 우리 소대로부터 그 책들을 공수해서 대대 본부로 가져가 보았다. 하루키의 전도사이기도 했다. 소대원들도 하나둘씩 읽기 시작했다.)
제대하고서는 그 때, 나름대로 마음이 맞았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하루하루 같이 시간을 보내고 어느정도 고통을 서로 덜어줄 수 있었던 기억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군대를 가보지 않았다면, 정확히 군대가 무엇인지는 평생 알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맞다가, 나올 땐 욕조차 못하고 나왔다. 하지만 때릴 수 있었던 사람들을 그다지 증오하진 않는다. 시스템이 폭력을 주입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을 컨트롤 하는 방식에 사용되었을 뿐이지, 그들이 폭력으로 뒤덮힌 존재들은 아니었으니까. 결국에 시스템이 이를 없애고자 할 때, 그들은 영창으로 던져졌고, 주민등록엔 빨간 줄이 그어졌다.
삶을 돌아보고, 관조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고, 정말로 다양한, 이 세계에 실제로 살고 있는 갖가지 유형의 사람들과 살을 맞대고 살아갈 수 있었던 짧지 않은 기회였다고 자위해본다. 그렇게도 생각해본다. 빚 갚으러 갔었다고. 그리고 갚을만큼 갚고 나왔다. 자, 이제 난 이 나라가 나를 지켜주기를 당당히 바라고 있다. 아무런 꺼리낌이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GIVE AND TAKE원칙에 준하고 있다. (그러나 아다시피, 그런 생각은 "환상"이다. 누구도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고 살고 있는데,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일 뿐이다.)
제대할 때쯤 나의 천재적인 친구 하나가 강원도 홍천에서 포병으로 주둔하게 되었다. 그녀석을 면회 갔을 때 녀석이 써내린 5개의 단편 소설을 보았던 일은, 아직도, 나의 자기반영을 여지없이 뭉게주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있었던 거였다.(끊임없는 이미지 트레이닝의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내부에도 있다. 베트남전 때 베트콩의 포로가 되었던 미군들의 이야기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서로의 머리를 굴려서, 자신들이 기억나는 구절들을 연결하여, 성경책 한권을 수용소 안에서 만들어냈다고 한다. 종교 생활을 유지하면서,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들은, 변함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은 남자들로서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카더라통신).
이슬람을 믿었던 터키인들은 한국전 당시 주둔지에서, 알라의 가르침대로 한국인들을 위해 아낌없이 교육기관을 짓고, 봉사활동을 마다치 않았다고 한다. 물론, 고엽제에 당하거나, 견딜 수 없을만큼의 정신적, 육체적 외상을 입은 이들은 평생을 그 울타리 안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있다...'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다.
조금씩은 건져먹을 삶의 갖가지 앎의 조각들이 군대 안에 있다. 모조리 부정하지도, 모조리 인정할 수도 없는 "삶"의 모습이 그 안에 있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해볼수록...그것은 몇마디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되어간다. 그래서 술자리는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끝나질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