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처럼 흩어질 몸이기에 묘비에 적을 것이 없어요. 예전엔 죽은 나를 기억해 많이 슬퍼해 주길 바랬지만 이제는 빨리 잊어 주길 바래요. 슬픈 건 싫어요. 음... 내가 남긴 업적이 있어 그것으로 (기쁘게) 기억된다면 좋긴 하겠네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Meme을 남긴다. 사실 이름을 남긴다는 것도 웃긴 일이죠. 많은 사람들이 그가 처음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해도 가장 논란이 적을 만큼 권력이 있었거나 시기를 잘 타고 난 사람이 처음이라고 정해지는 거잖아요. 어차피 이런 제비 뽑기로 당첨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저라 해도 기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과학이란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사람이 정말 중요한가 봐요... Gene은 어디 갔냐구요? 어디 유전자가 죽어야 남나요... 혹은 죽는다고 다 남길수나 있나요... 살았을 때 번식에 성공하고 그 자식이 번식에 성공할 수 있도록 잘 키워야 남는 거죠... 전... 유전자 안 남기려고요... 인생이란 너무 고달퍼서 자식한테 물려줄게 못 된다고 봐요... 제가 이렇게 발버둥을 쳐도 제 친족들에게 잘하고 친구들에게 잘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저와 비슷한 유전자들이 많이 남도록 행동하면서 살다 죽겠죠? 이런 걸 부처님 손바닥이라고 하는 거군요...
I have had my invitation to this world's festival, and thus my life has been blessed. My eyes have seen and my ears have heard. It was my part at this feast to play upon my instrument, and I have done all I could. Now, I ask, has the time come at last when I may go in and see thy face and offer thee my silent salutation?
from Gitanjali 16th
언제나 고뇌하던 프로그래머... 이제 덧없는 고뇌를 끝내고 쉬러가다.
그의 코드는 고뇌하지 않으리...
-하하 조금 웃기게 되었네요. 전 커서 뭐가될까요? 프로그래머도 하고싶고 물리학자도 하고싶고...
그런데 제가 쓸데없는 고뇌를 죽어서도 계속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건 뭘까요?
어쩌면 제가하는 고뇌는 쓸데가 있어서 그런걸까요?
시신을 기증하거나...장기를 기증하거나...하다못해 (한국에선 불가능하겠지만) 조장이라도 지내서 뭔가 도움이 될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이렇게 하면 묘비는 없지 않을까요?
어쨌든...뭔가 보는 사람을 유쾌하게 만들수 있는 센스있는 말을 적을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럴 능력은 없으니 이렇게 적겠습니다. "후회하기 전에 그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보기를."
열심히만 산다면 죽고나서 잊혀진대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겁니다.
유가족들은 그 유언이 꼭 이루어지도록 해 드리고자 묘비명도 그에 걸맞게 새기기로 했다. 그의 묘비는 술통으로 세웠고, 그 술통에 새긴 묘비명은 이러했다.
밑둥이 새게 하라
그 죽은 애주가는 과연 죽어서도 술을 마실 수 있었을까나요? 재밌었어요? 어느 시집에 실린 '모리야 센얀(일본선승)'이라는 나이든 어른이 쓴 시 아닌 시를 보고, 배꼽 잡고 뒤집어 지며 웃다가 "그럼 그의 묘비명은 과연 어땠을까? 나로서는 모르는 게 당연한 고로 나 스스로 한 번 지어 드려 볼까?" 라는 발동이 걸려 이렇게... (아, "유가족 어쩌구..."부터는 맑은이가 지은 것) --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