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2월 1일 태어났다 미국영화광인 아버지가 존웨인의 이름을 빌어와 '웨인'이라고 이름 지었다. 샌프란시스코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화교감독인 웨인 왕은 인디 영화로 평가받은 후 헐리우드로 가서 실패하고 다시 인디로 돌아와 자신의 명예를 되찾은, 이상한 이력의 작가이다. '미국속의 중국인'을 그려내는 그의 시선은 따뜻함과 위트를 지녔으며, 쉽게 강요하거나 결론 내리지 않고 인물들의 갈등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그 속에서 마치 오즈의 동양적 미장센과 스튜디오 시절 헐리우드 영화의 노스탤지어가 만난 것처럼 묘한 감동을 일으킨다. 80년대초, 웨인 왕은 짐 자무쉬 등 뉴욕을 근거로 한 새로운 인디영화들이 등장하던 시기에 거의 처음으로 화교사회를 본격적으로 다룬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고 이후 이른바 Post American Cinema의 한 조류를 이루는 '변방 영화'의 출발점이 되는 아시안-아메리칸 영화의 시작을 알렸다. 특히 'Chan Is Missing'(82)으로 시작해서 'Dim Sum' (84)과 'Eat a Bowl of Tea'(89)에 이르는 '이민 세대 3부작' 은 웨인 왕의 초기 영화들에서 일관되게 보여주는 이민 세대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탐색이 집결된 일종의 연대기를 이룬다. 그리고 'The Joy Luck Club'은 그 요약판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며 이후 웨인 왕의 영화적 전환을 알리는 과도기가 되었다.
웨인 왕은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과 오클랜드 예술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으며,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 한때 방송과 영화계에 종사했었다. 홍콩에서 본격적인 감독 데뷰를 하기 직전. 웨인 왕은 영화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다. 그리고 AFI와 NEA에서 얻어낸 기금 2만2천불로 첫 번째 영화 'Chan Is Missing'(82)을 완성한다. 극도의 저 예산으로 제작, 각본, 편집, 연출을 겸한 웨인 왕은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벌어진 평범한 강도사건의 반향과 추적을 통해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민세대의 크고 작은 갈등을 보여주었다. 데뷰작 'Chan Is Missing'('Chan' 이란 이름은 미국에서 가장 흔한 중국이름이면서 또한 중국계 미국인-Chinese American-을 의미하는 이중적 메타포로 쓰였다)은 다이렉트 시네마 기법의 적절한 도입과 극적 내러티브의 운용을 보여주며 당시 헐리우드 영화의 장식적 역할을 하던 차이나타운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 안의 사회적 갈등관계를 중심으로 그려낸 최초의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웨인 왕의 두번째 영화 'Dim Sum'(84)은 샌프란시스코 차이나 타운을 배경으로 이민 1세대인 어머니와 미국에서 태어나 나이먹은 딸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중국을 그리워하며 영어로 말하기를 거부하는 어머니, 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어 결혼을 미루는 미국화된 딸, 그리고 형수가 자신과 결합해주길 기다리며 이들을 돌보는 삼촌이 등장하고, 이들은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 속에서 부딪치고 어울리고 헤어진다. 그사이에서 카메라는 원망하고 미워하다가도 서로 닳아가는 어머니와 딸의 미묘한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며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은 감정의 화합과 이해를 향해 감동적으로 모여 든다. 웨인 왕이 정체성에 대한 탐색기를 거쳐 본격적 화두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 'Dim Sum'은 비평 계의 찬사를 받았고 웨인 왕에게 헐리우드 입성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초기 두편의 인디 영화에서 보이던 위트와 따뜻한 진지함은 헐리우드 진출작 'Slamdance'(87)에서 실종되었다. 이방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계속되는 탐색은 지나치게 스타일화되어 강박관념으로 전락하고, 종잡을 수 없는 과잉 이미지의 느와르 멜러드라마 'Slamdance' 는 흥행과 비평에서 참패를 맞는다. 웨인 왕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마치 빔 벤더스의 (해미트)처럼' 헐리우드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웨인 왕은 그 뒤 루이스 추의 동명소설로 'Eat a Bowl of Tea'(89)을 만든다.
이 영화는 과 거의 한 때, 2차대전 직후의 차이나타운으로 옮겨가서 오히려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부인을 데려올 수 없었던 당시 상황 속에서 이민세대들이 수없이 겪었던 보편적 공감대를 전제로 하고 'Eat a Bowl of Tea'은 1949년 차이나타운에서 많은 이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린 한 젊은 부부가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화합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기까지를 보여준다. 서글프고도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들로 채워진 'Eat a Bowl of Tea'은 홍콩영화계 지기들의 도움을 받아 제작되었고. 리얼리티와 코미디의 활발함이 녹아 있는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이질감이 화해하는 장면에서 거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다가서는 카메라의 줌- 인 쇼트는 소박한 감동을 준다). 그 후 실험적 영상을 시도한 'Life Is Cheap... But Toilet Paper Is Expensive'(90)는 참혹한 유혈장면때문에 R등급으로 상영되었다. 93년 웨인 왕은 에이미 탄의 베스트첼러를 원작으로 한 'The Joy Luck Club'을 만든다 다분히 헐리우드적인 컨벤션 위에서 이야기구조를 챕터화하여 각 인물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네 어머니와 딸들의 이야기는 전통과 새로움의 전형성을 보 여주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이해와 교감을 끌어낸 수작이며, 상상과 현실이 조우하는 지점을 중국으로 회귀하는 1.5세대를통해 표현함으로써 헐리우드 시스템 내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The Joy Luck Club'은 웨인 왕으로 하여금 그간의 공백을 만회하게 해주었고 웨인 왕은 이 시기에 예상 외의 전환점을 이루어낸다.
그는 Paul Auster의 단편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고 연기자들과 스탭을 모아서 브룩클린 거리로 달려나가 '즐겁게' 'Smoke'를 만들었다. 이제껏 웨인 왕 영화의 아이덴티티를 이루던 차이나타운을 떠난 첫번째 영화 'Smoke'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였으며 에피소드들이 평행적으로 진행되는 새로운 내러티브 구조를 성취하여 비헐리우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브룩클린 3번가 모퉁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빛나는 단편들을 포착해낸 'Smoke'는 웨인 왕에게 일종의 포즈(pause)이며 영화 만들기의 사고를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고, 'Smoke'를 본 마돈나, 루 리드, 짐 자무쉬, 마이클 J폭스 등의 스타들이 추가지원해왔으며, 자신의 스탭을 이끌고 원작자 폴 오스터와 의기 투합한 웨인 왕은 정해진 시나리오 없이 마치 잼 세션처럼 'Blue in the Face' (95)를 완성했다(이 영화의 크레딧에는 각본 난에 '연기자들과 웨인 왕과 폴 오스터가 함께 창조했음' 이라고 적혀 있다.'Blue in the Face'는 'Smoke'에 관한 영화이며, 더 정확히 말하면 웨인 왕과 'Smoke'의 만남을 '축하하는' 올 스타실험영화이다. 그리고 지금 웨인 왕은 다시 중국의 아이덴티티로 돌아 왔다. 에이미 탄 원작의 '부엌 신의 아내'는 보류 중이지만 웨인 왕은 'Blue in the Face'라는 프로덕션을 만들어 'The Big Nowhere'(96)를 만들었고 'Chinese Box'(97)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