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이런... 사람은 늙지 않는다. 그것은 동물과 마찬가지이다. 다만 변화할 뿐이다.
이정호는 위에 제기된 맥시멈 평균수명을 곧 넘을 준비를 하고 있다.(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로... 흠!) 아직도 새로운 세포들(정자를 포함하여)은 계속 나타나고 있으며 태어난 이래로 계속 죽어나가는 세포들이 있다(이들이 죽지 않는다면 나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이 상식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미 3번(12 * 3)에 걸쳐 환골탈태했으며 앞으로도 세번은 더 할 예정이다. 12라는 숫자는 일년동안에 달이 뜨고 지는 수이면서 땅이 모습을 바꾸는 수이다.
우리는 땅의 형체를 빌어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땅의 신세를 지고 산다. 사람이 늙는 것은 우주의 섭리이며 여기에 어떠한 다른 길도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는 동서양의 철학이 오행론과 변증법이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동의하고 있으며 핵심적인 주장이기도 하다.
변화하지 않음에 대한 갈망은 신과 우주정신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낳았으나,
이정호는 이들 개념 또한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변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변치않는 것은 자연과 동화하여 변화하는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연과 후손을 통하여 미래에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흠 역시 늙음에 대한 보다 구체적 논거는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오히려 옆길로 빠진 것은 아닌가?"
PuzzletChung은 수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진화를 가속화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2세의 발전에 투자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결과적으로 그렇지만,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는 않습니다.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a --
김우재
2세의 발전에 대한 투자라기 보담은 자신의 번식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전자가 이타적 죽음이라면 후자는 이기적 죽음이 될텐데, 인간의 죽음은 과연 어느 쪽? (말 되나?)
맑은 간단히 말할 때, 개체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만 유전자 입장에서는 둘다 같은 말입니다. 이기적인 것이죠. 어쨌든 유전자든, 개체든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위 김우재님 말대로 그냥 결과적으로 그런 거지요...석
인간은왜늙는가? 젊어지면 이상하잖아. 우스개소리였습니다. 인간이 늙는다는다는것에는 젊음의 그 뛰어난 집중력 그 뛰어난 생식력(-_-)을 비교해서 나올수 있는 말이겠죠. 그런데 식물은 늙지 않나요?(무지로 한순간에 보내버린다!^^;;) 동물도 늙고 식물도 늙는다면 대상을 넓혀서 생각할수도 있을것같아요. --
rururara
당연히 식물도 늙습니다. 목본류는 천천히, 초본류는 빨리 늙죠. --
김우재
도대체 우리는 왜 늙어야만 하는 것일까? 젊어지면 이상하잖아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회춘은 본래 근거 없는 이야기인가요? --
맑은
인간이 늙는 이유라...인간이 늙는 이유는 인간 자신을 불태우며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영혼과 생명을 태워가면서 세상을 이루어 나가죠. 어떤 사람들은 더 오래 살아갈수도 있겠지만 그런것은 개인차이가 아닌 영혼의 차이는 아닐런지... 인간이란 존재가 불태우리만큼 짧은 삶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지구와 같이 오랜세월동안 나이를 먹지 않고 살아간다면...과연 우리가 이정도의 발전을 이룰수 있었을까요? 동물도 식물도 늙는다고 하시지만...글쎄요... 늙는다는것이 눈앞에 드러나는 존재는 우리 사람들이 아닌가 합니다. 동물들은 늙어도 우리가 보기엔 늙은티가 잘 안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것처럼 노화란 자신을 불태우며 살아간 대가가 아닐까요... 세상에 어떠한 식으로든 영향을 준 만큼... 몸은 그 기력을 빼앗긴 셈이니... 조금은 다른 모습..약한 모습이 되어 가는건 아닌지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lucifertehbluss
훔. 시간의 제약은 동기의 제공사유가 되는 것이 확실하겠죠. 인간은 살면서 참 여러가지 동기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종의 유지, 개체의 유지, 개체의 불편의 원인제거, 미래에 개체나 종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의 제거 또는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의 생성.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하는 일이겠죠. 물론 동물에게는 절대 없는 종과 개체의 무의미한 파괴를 원하는 인간들도 가끔은 있는 걸 보면.. 신기합니다만. --
saintwar
인간은 왜 늙는가..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모든 것은 원소 블럭들의 결합체들입니다. 이런 원소블럭들이 모였다가 다시 깨졌다가 다시 모였다를 반복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생태계 순환입니다. 사람들은 인간을 자연과의 공존체로 보지 않고 개발해야할 인간 아래의 것으로 보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른 생물체와 다른 인간 자체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인간도 자연의 테두리안에서 벗어나는 존재는 아닙니다.
인위적으로 인간의 수명을 늘리고 늙고 병드는것을 막는다면 결국은 인구증가로 지구폭발에 이르게 될 것 입니다. 지금이라도 사람들이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인지하였으면 좋겠습니다. --
anydrus
다른 모든 생물도 전체 자연과는 다른, 그 생물 자체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자연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 설득력에 보템이 될까요?^^;; 제 생각입니다.--
석
한번 거꾸로 생각해보았다. 노화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자니,
DaNew는 청소년기의 인간을 '젊도록 하는' 구조를 매우 신기하게 느꼈다. 청소년기에도 노화는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청소년기란 "적당히 노화가 된" 상태일까?
책 『인간은 왜 늙는가 』(

[
ISBN-8958200227]). 뭐라고 쓰였을지 좀 읽어 봤으면 좋겠다 싶었던, 그러나 꼬부랑 글자여서 가까이 할 수 없었던, 바로 그 『 Why We Age 』의 번역본. 병원에서 간병하며 밤낮 따로 없이 초인으로 살았던 올해(2005년)초. 나의 특별한 이 시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을 찾아보자, 해서 찾은 것이 이 책입니다. 번역본이 나와 있을 줄 꿈에도 생각 못했지요.
고맙게 잘 읽어 보았습니다. 읽는 동안 결말이 너무 궁금해서 읽는 동안에는 내내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콩닥 거리더니만 다 읽고 나니 후련한 것이 마음이 너무 평온해 지더군요. 이 평온함은 새로운 무엇을 알았다는 성취감이 아니라 어떤 굴레로부터 해방된 안도감입니다. 생물학적 정보란 것은 그 책을 읽고 있던 당시에는 참으로 사이드이펙트에 지나지 않았었답니다. 부모님의 늙은 병들을 다스리기에 그 전에 노화 방지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한 자식의 죄책감에 대한 무죄 선고를 받은 바로 그 때의 안도감.
맑은이 이 책을 다 읽은 뒤 삶의 무게를 한꺼풀 벗기고 평온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던 즈음에 <KBS 생노병사의 비밀>이란 프로그램에서 과거의 방송을 번복하는 내용의 신기한 주장을 담은 내용을 방영하더라고요. 그렇다고 KBS에 해가 될 것이야 없겠지만. 아무튼 과거의 주장을 번복한 바로 그 주장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1997년에 출판되었다고 했나요? 그렇다면 인용된 연구자료들은 그보다 이전의 것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최소한 8년이 훌쩍 넘는 세월인데 다시말해 자연상태의 강산이 바뀐다는 세월이지요. 학계의 바람직한 주장이 현실로 받아 들여지는데는 참 오랜 세월이 걸리는구나라는 생각을 잠시 해 봤습니다. 그런데 그릇된 열풍이 퍼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이상하죠. 당연하다고요?
맑은이 적잖은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왜 그릇된 것들은 그토록 빨리 퍼지는가?"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군요. (음, 이 물음은
질문의공책감이로다.)
아무튼 이 책은
맑은이에겐 좋은 책이었다는 것. 특별한 점수를 주고 싶기도 합니다. 아마도, 제가 읽었던 전 분야의 번역서 중에서 "번역이 가장 매끄러운 책"이 아니었을까 싶던데요. 외국사람 이름이 나오는 부분만 빼면 번역서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읽게 됩니다. 이
인간은왜늙는가 페이지 정말 자주 들여다 보는군요.
이것저것 얻은 것들이 많지만 읽지 못한 이들을 위해 딱 한 곳만을 짚어보라 한다면 노화와 죽음은 다른 것이다!라는 부분입니다. 늙음은 곧 죽어가는 것이라 여겼으나 이 책을 읽고나서는 노화는 어쩌면 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노화가 병일지 자연스러운 것일지를 따지는 논쟁에 낄 수야 없겠지만, 그런 댓거리들을 읽고 모르는 것을 물어볼 때만큼은 노화와 죽음이 다름을 알고 개념을 확실히 한 상태에서 질문을 해야 하리라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노화와 죽음이 다르다는, 적어도
맑은이에게만큼은 새로운 이 각도로,
인간은왜늙는가를 다시금 꼼꼼히 읽어보리라는 동기가 생겨났습니다.
'노화'를 죽어가는 것이라고만 오해하며 살아오다가,
인간은왜늙는가라는 이 페이지에 참여하면서 '노화'라는 단어를 머리에 각인시키게 되었고, 『인간은 왜 늙는가 』(

[
ISBN-8958200227])라는 책을 읽고서, '노화'와 '죽음'은 다른 범주이다, 라는 것과 인간은 노화로 죽는 게 아니라 병으로 죽게 된다는 2개의 확신을 얻게 되었고, 노화도 결국 또 하나의 병이 아닐까?라는 물음을 던짐으로써, 확신은 와르르 무너졌고 '
인간은왜늙는가'라는 원점으로 회귀하여
나는모른다를 외치게 되었었다.
그렇게 원점 회귀 후 오랜 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많고 많은 일상들이 아득히 자나갔고, 또 하나의 일상 속에서 보는 사람없이 켜져 있는 TV에서 다음과 같은 연구결과에 대해 소개되었다. 최근 TV다큐(정확한 프로그램이 기억안남. 딴짓하다가 이 소리듣고 화들짝 들여다본 것이기 때문. 그 프로그램의 정보를 아십니까?
AnswerMe)
세포의 노화 정도와 강도에 관한 실험:
- A : 덜 노화된 세포 조직: 충격에 더 쉽게 파괴.
- B : 더 노화된 세포 조직: 충격에 더 오래 버팀.
위의 연구결과를 통해 우리는 다음을 추론할 수 있다.
- 노화는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적응한 결과로서 생물진화의 표상이다.
- 노화는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삶의 상징이다.
주름. 주름은 노화의 대표적 상징이다. 화장품 광고 등에서 피부 주름을 세포손상으로만 표현하는 경우가 많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Repair제품을 내어 놓는다. 그러나, 주름은 단순히 세포수준에서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는 관점이 필요해 보인다. 세포수준이 아니라 조직수준으로 보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주름은 세포가 손상된 것이므로 피부가 약해진 것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크게 보면 다르게 보인다. 약해진 것이 아니라 튼튼해 진 것이다.
주름을 할머니의 얼굴 말고 다른 곳에서도 찾아보자.
씨실 날실이 엇갈리면서 튼튼한 직물이 탄생한다. 직조되기 전에는 잘 끊어지고 연약한 것들이지만 그것이 직조되어 하나의 면조직을 이루게 되면 보통의 힘으로는 파괴시키기 힘들도록 튼튼한 조직이 된다. 우리의 피부조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의 피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직물과 같이 주름과 주름이 서로 엉기어 있다. 이 주름에 의한 피부 조직은 튼튼함을 부여하는 방법 중 하나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아기피부는 말랑말랑, 할머니 피부는 거칠거칠. 아기피부가 튼튼할까 할미피부가 튼튼할까. 이 주름이 깊어지면 우리는 늙었다고 표현한다. 즉 주름은 노화의 표상이다. 주름은 튼튼함을 부여하는 기작이다. 그러므로, 주름이 노화의 표상이라면 확실히 노화는 죽음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아 마땅하다.
자연상태에서의 수명이 비교적 긴 동물들 중에서,거북이, 코끼리,악어, 등의 외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라의 외피보다 거북의 외피가 더 탄탄한 것은 거북 등의 다각형 모양으로 잡힌 주름 때문이 아닐까, (거북이등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의 예술작품이라는 생각뿐이다,어쩜 그럴수가) 코끼리는 나이가 어려서도 주름이 상당한 것 같고, 악어의 울퉁불퉁 외피는 각질외피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을 듯하고, 등등 (고래 껍질은 어떻까?). 외피는 생물의 방패이므로, 탄탄한 외피는 오래 살기 위한, 한 요건이 되는 것 같다. 조개나 거북이 같은 외피를 가진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살가죽이 있을 뿐이므로 이 살가죽을 거북이 등에 가깝도록 탄탄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기 위한 시발은 당연 주름잡기일 것이다. 물론 코끼리 가죽의 털(?)끝에도 못미칠 강도이지만, 각자 주어진 조건에서 필요한 정도의 노력과 그에 따른 강도가 아니겠는가. 음, 과연 그런 것 같다. 주름은 적응의 결과일 것라는 것.
더딘 세포분열. 주름은 피부조직에서의 노화를 설명하지만, 더딘 세포분열은 생체조직 전반에서의 노화를 설명하는 것 같다. 노화와 암의 전이에 관한 이야기들을 자주 듣고 본 바가 있다. 암은 젊은 사람에게서는 빨리 전이되고, 늙은 사람에게서는 더디게 전이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면, 젊은 사람들은 세포분열이 왕성하니까 암세포도 덩달아 왕성하게 분열을 하게 되고, 늙은 사람들은 세포분열이 더디니까 암세포의 분열도 덩달아 더디게 된다, 그래서 늙은 이들은 암이 발병하더라도 암으로 죽는 게 아니라 다른 병으로 인해 암세포와 함께 살다 암세포와 함께 무덤으로 향한다는 설명에 그친다. 늙은이들에게서 암의 전이가 더딘 것을, 적응의 결과라는 설명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나 더 이어 붙여도 되지 않을까? 다시말해, 늙어서 '세포분열이 더딘 것'을 노화의 한 현상으로서, 죽을 때가 되었다는 적신호가 아니라 내적 환경에 적응했다는 청신호로 보는 시각을 하나 더 가져도 되지 않을까?
쉽게 가져보는 희망사항이 있다. 늙은 이도 세포분열이 왕성하도록 되어 먹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오래 살지 않을까. 이것이 대부분의 바람이겠으나, 그랬더라면 우리는 대부분은 암으로 죽었지도 모를 일이다. 암세포의 근본적인 원인이 세포분열 자체라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더딘 세포분열이란 이 길도 잘 선택한 길인지에 대해서는 역시 의문이다. 세포분열이 더딘 만큼, 감염으로부터의 저항력은 그 만큼 떨어질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암세포를 공략하려다가 외부 방어력을 떨어뜨렸다는 것인데, 이 관점에서 보자면 더딘 세포분열은 암세포에게 "너 죽고 나 죽자"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이고, 감염 문제를 의학에 전적으로 맡긴다고 보면(=완벽한백신개발체제에의존) 이 더딘 세포분열은 암세포에 대해 "너도 살고 나도 살자"고 하는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암세포는 유전자시스템 자체의 결함으로 밖에 볼 수 없으므로, 그 결함은 일격에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므로, 일단 끌어 안고 살아가면서, 해결책을 암중모색하는 과정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 끌어안고 살아가기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노화가 아니었을까. 노화라는 방법을 통해 생명을 가늘고 길게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20년은 젊고 굵게 살고 80년은 가늘고 길게 살고 필요한 만큼 오래살기. 뭐 그다지 나쁜 적응은 아닌 것 같다.
주름과 더딘 세포분열 등에서 살펴보았듯이, 노화는 죽는과정이라기 보다는 내적 외적 환경에 대한 적응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다. 적응은 근본적으로 '죽음'이 아니라 '삶'을 위한 것이므로, 노화를 환경 적응으로 볼 수 있다면, 노화는 바로 살고자 함이요, 곧 생명이다. 아무튼 이번 기회를 통해, 노화는 죽음과는 완전히 다른 범주라는 확신을 다시 갖게 되었다. 노화를 적응으로 본다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노화가 진행된다던가, 청소년기의 노화 등등이 모두 이상할 것 없이 설명이 되는 것 같다. 한 편으로 기관의 완성을 위해 성장을 하고, 다른 한 편으로 기관의 방어를 위해 노화가 진행되는 것으로.
일상으로 돌아와서, ...
그렇다면, 노화방지라는 말부터 수정해야 할 것이다. 노화방지약의 선전을 보면 빨리 죽여주는 약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우리는 앞으로 이런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주름을 보고, 죽음이 가까워 온다며 우울해 하기보다는, 그래 잘 싸우고 있구나 고맙다 라며, 남은 생은 좀 더 밝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노화는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삶의 상징이다.
아무튼, 2012년에는 노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각이 생긴 것 같다. 언제 또 무너질지는 모를 일이지만.
살기 위해 늙는 것이라면, 늙어서 죽는 법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늙어서 죽는 게 아니라면 무엇으로 죽을까? 가까운 곳에서의 죽음들을 따져보면 대부분 이런 레파토리이다. [사고 -> 드러누움 -> 폐렴 -> 사망], [사고 -> 드러누움 -> 폐렴 -> 폐렴치유 -> 심부전.신부전 -> 사망] , [사고 -> .... -> 사망] 대체로 사고에 의한 사망이다. 치매의 경우는 뇌가 없어져 죽을 예정이지만, 뇌가 다 없어져 그제서야 죽는 경우는 애당초 보질 못했고 대체로 사고로 죽었다. 사고에는 교통사고,낙상사고(골절,인대파열,타박상 등을 입음), 뇌졸중, 심장마비, 화상 등등을 들 수 있다. 사고들의 공통분모는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기관의 기능저하를 가져와서 결국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암으로 죽은 사람이 몇 된다.
여러분들 주변에서는 늙어서 사망한 분들이 있는가?
맑은이 주변에는 그런 분이 없는 것 같다. 의사들이 노환이라고는 말하지만 사망진단에는 노환이라고 적지 않는다는 것도 알 필요가 있다. 폐부전,심부전,신부전, 뭐 이런 것들을 적는 것 같다. 가족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쩌다가 돌아가셨니?라는 물음에 노환이시지 뭐, 라고 먼저는 짧게 대답하지만, 시간이 좀 더 주어지면, 이러쿵 저러쿵 하시다가 돌아가셨다라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유가족들이 말하는 나중의 장황한 이야기들 속에 사망의 원인이 들어있다. 심장이 멎고 숨을 쉬지 않으면 죽은 것인데, 늙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확진은 없는 것 같다. 따라서 노환이란 존재하지 않고, 그저 노화가 있을 뿐인 것 같다. 죽음의 암시가 아닌 삶의 의지로서의 노화가 있을 뿐인 것 같다.
만약, 암과 치매가 정복되고 모든 전염병이 정복되고 나면, 모두가 사고로 죽거나 영원히 살게 될까? 그로인해 지구는 더욱 미어 터지게 되고?
알 수는 없지만, 의학,유전공학,제어공학 발달의 정점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미래상을 영화 속에 표현한 작품이 있다. <바이센테니얼맨>이라는 영화. 본지가 너무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생생하다. 이 영화는 로봇과 인간의 사랑이야기이지만,
맑은이가 주의깊게 보게 된 것은 마지막 장면인 것 같다. 인간은 자신의 죽는 시점을 스스로 결정한다. 죽을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도우미가 밖에서 준비되셨나요? 라는 사무적인 질문과 함께 스위치를 내려준다. 죽음에 대한 결정권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 로봇도 그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손을 꼭 잡고 함께 죽음을 결정하게 되는데, 그 로봇이 결정권을 갖게 된 것도, 그 로봇이 법정투쟁을 통해, 법으로 인정하는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결정권이란 것도 눈길을 끌지만, 그 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고통없이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두었다는 것이었다. 모든 병이 정복되더라도, 인간은 오래살기를 소망할지언정 영원히 살길 꿈꾸지는 않는다는 걸, 나름대로 표현한 작품인 것 같고, 크게 공감한다.
음, 삼천포인가? 영화 이야기가 노화와 무슨 상관일까? 질병이 완전히 정복되고 나도 여전히
늙어서 죽는 법은 없을 것이다.라는 주장에 힘을 보태고자 한 이야기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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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2.2.5(일)